#1.
토요일 밤. 하늘이가 제 엄마 위에 드러누워 있었다. 하늘이는 태연한데 제 엄마는 힘겨워 보였다. 하루 종일 힘들게 고생한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 나머지, 하늘이더러 나한테 냉큼 와서 누으라고 했다. 하늘이는, 베개를 내 목에 턱 받치더니 내 배 위에 올랐다. 아빠를 졸지에 천연 침대로 만든 셈이다. 한참을 잠자코 있더니 불쑥 말을 꺼내는 하늘이.
하늘: 아빠. 아빠랑 하늘이는 기생관계지?
나: 음... 공생관계 아닐까? 하늘이는 아빠 위에서 자니까 편하고, 아빠는 하늘이 덕분에 배 마사지를 받으니까. 공생관계야. 악어하고 악어새처럼.
하늘: 개미랑 진딧물처럼?
나: 응.
하늘: 개미하고 진딧물 하자. 아빤 내 꽁무니에서 단물을 쭉쭉 빨아 먹어.
나: 윽... 차라리 악어랑 악어새 하자. 똥 냄새보단 입 냄새가 낫겠다.
하늘이가 잠들 때마다 꼼지락거리는 물건이 있다. 웬만한 아이들이 떼어놓지 못하는 인형 따위의 물건과 비슷한 종류다. 즉 아이들이 '분리불안'을 달래기 위해 집착하는 대상 말이다. 하늘이의 경우에는 그 물건이 좀 색다른데, 그것은 바로.... '고무줄 바지'다. 하늘이는 두세 살 때부터 내복 바지의 고무줄을 꼼지락거리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떨어지겠거니 하고 내버려 두었건만, 유치원에 가서도 이 버릇은 고쳐지지 않았다. 며칠 전부터는 아예 고무줄 바지가 두 개로 늘었다!
하늘: 하늘이랑 고무줄바지는 공생관계야.
나: 왜?
하늘: 고무줄 바지는 하늘이한테 기쁨을 주고 하늘이는 고무줄 바지한테 사랑을 줘.
나: 음... 기생관계 아닐까? 하늘이는 고무줄 바지 만지면서 기분이 좋지만, 고무줄 바지는 기분이 어떤지 모르잖아.
하늘: 아니야~ 공생관계야. 고무줄 바지는 내가 만져주면 좋아해.
이런 침대 노릇은 공생관계가 아니라 기생관계의 피해자 노릇이라고 내심 생각했다. (악어새 위에 악어가 올라앉은 꼴이야! 악어, 냉큼 내려와! 숨막혀 죽겠다구.) 또한 하늘이와 고무줄 바지의 관계는 완벽한 기생관계다. 고무줄 바지 입장에서는 득 볼 게 없으므로. 하늘이가 만지면 만질수록 바지는 닳고 헤지고 더러워지기만 하니까. 하지만 바지에게 감정이 있다면? 정말 하늘이가 사랑해 줘서 행복해 한다면?
#2.
어쩌면 부자/모자/부녀/모녀 관계란 전적으로 '기생' 관계일지도 모른다. '부모는 자녀에게 무작정 퍼준다. 자녀는 부모에게서 무작정 받는다.' 하지만 부모가 생각하기에 따라 공생관계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가령 이런 관계를 두고 부모가 자녀를 기생충 같은 존재라고 생각한다고 해 보자(실제로 그런 예를 본 적도 있다). 그 부모는 과연 행복할까? 과연? 하늘이의 고무줄 바지는 감정이 없는 존재이고, 하늘이는 감정 이입을 통해 고무줄 바지와 '나-너'의 관계를 형성했다.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최소한 하늘이에게는 이것은 감정을 주고 받는 공생관계다. 하물며 감정을 지닌 자녀를 부모에게 기생하는 존재라고 부를 수 있을까? 물질적으로는 그렇다 치더라도, 감정적인 면에서는 그렇지 않다. 부모는 오히려 자녀에게 많은 것을 배우고, 많은 기쁨을 얻는다. 부모가 그 관계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상황은 판이하게 달라지지만 말이다.
#3. 생각거리들
린 마굴리스 <공생자 행성>, 리처드 도킨스 <이기적 유전자>->미토콘드리아가 주는 교훈. 도킨스와 마굴리스의 주장이 과연 대치되는 것일까?
슈퍼 유기체- 인간 몸무게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기생생물.
- 2008/03/17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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